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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시 (2010) :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의 '이창동' 감독

lay_ 2019. 1. 22. 17:57

01. 시(2010) :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의 '이창동' 감독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어렵사리 꺼내본 영화, 오늘은 이창동 감독의 시(2010)를 보고 적어보려 한다.

이창동 감독의 많은 작품들을 본 건 아니지만, 작품마다 강렬한 무게감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보고나면 후폭풍을 견디기 어려워 밤새 뒤척이곤 했달까. 작지만 무거운, 강렬한 쇠구슬 하나를 마음속 언저리에 던져진 기분을 받았다. 이 영화는 2010년에 개봉된 영화로 배우 윤정희씨가 함께하는 영화였다. 정말 최고의 캐스팅이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당시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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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은 물소리가 들리며, 강에 스스로 떨어져 죽은 여고생의 시신과 함께 타이틀인 '시'가 나오며 시작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미자는 자신의 딸의 아들과 함께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 할머니이다. 미자의 수입은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분의 보조도우미 파트타이머. 하루에 3시간정도 일을 하고 돈을 받아간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미자는 동네 문화센터원에서 김용택 시인의 강의가 있는걸 알고, 접수기간이 끝났음에도 찾아가 접수해달라고 요청하여 수업을 듣게 된다. 이렇게 미자는 '시'와 처음 만나게 된다.






어렸을때부터 조금은 남달랐던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김용택 시인이 말하는 '본다'라는 걸 느끼기 위해 미자는 보려고 한다. 사과를 보려했고, 나무를 보려했고, 더 나아가 스스로 자살한 여고생인 희진이가 다니던 학교를 보려했으며 성폭행 당했던 과학실험실을 보려했고, 희진이가 마지막으로 떨어졌던 강을 봤다. 


김용택 시인이 영화내 대사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사과를 몇번이나 봤을까요? 몇백번? 몇천번? 몇만번? 아니 우린 한번도 사과를 본 적이 없어요" 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보다 일상속에서 '본다' 라는 말이 참 많이 쓰인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인 눈을 뜨고 본다라는 개념말고도 느껴본다, 먹어본다, 만져본다, 말해본다 등... 본다라는 의미.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미자는 첫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사과를 들고 이리저리 본다. 그리고 이내 "사과는 역시 보는 것 보다 먹는거야"라며 한입 깎아먹는다. 사실 시라는 건 글자로 적어내지 않아도 이처럼 주인공 미자의 삶에 녹아있는 것 일 수 도 있다. 따로 보려하지 않아도 맛있는 사과처럼.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해 시낭송회도 찾아가고, 직접 보고 느끼는 것들을 메모장에 그때그때 적곤 한다. (시를 어떻게 써야한지 모른다고 하셔놓고, 이미 기가막힌 시의 문장들이다) 미자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이다. 제일 중요한 명사들을 나열하여 의미부여를 하는 시에 있어서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가장 큰 방해물이기도 하다.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시를 포기하지 않는 미자. 결국 이창동이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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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걸려온 전화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손자가 강에서 떨어진 여고생을 성폭행하였고, 그로 인해 희진이란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아직 살 날이 구만리인 희진이의 삶은 그렇게 끝나버렸던 것이다. 미자는 액자속의 희진이를 보다가, 직접 마주하기로 한다. 주인공 미자가 본다라는 개념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인거 같다. 미자는 희진이가 죽은 강을 찾아가 한참을 바라보다 비를 맞고, 그 날 자신이 보조도우미를 하고 있는 강회장을 찾아간다. 죽기전에 한번만 남자로서의 욕구를 느껴보고 싶다는 강회장과 성관계를 맺은 미자는 후에 이일로 자신의 손자 합의금 500만원을 구한다. 희진이를 지속적인 성폭행하여 벼랑끝까지 몰았던 손자를 위해 같은 여성인 미자가 성관계를 맺는다. 난 이 부분이 참 아이러니하고 거북했다. 결국 미자는 희진이랑 다를게 없어 보인다.




시(2010), 이창동




어느새 김용택 시인의 마지막 수업날이 찾아왔고, 시 한편씩 쓰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들 중에서 써낸 사람은 미자뿐이다. 오직 그녀만 써냈다. 그녀가 수만번 보았을 공간들이 화면에 잡히고, 조용한 미자의 목소리로 시는 시작된다. 그러다 학교가 나오는 부분에서 앳된 목소리로 바뀌는데, 처음에 나는 미자의 어릴적 목소리인가 했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우린 희진이의 목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었으니까. 우린 마지막장면에서 희진이를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물소리가 흐르며 끝이 난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창동 감독




배경음악 한번 없이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지루할 새 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시'를 보고, 나는 감독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이 영화는 철저하게 상업영화가 아니다. 아바타같은 상업영화가 성공하는 시대이지만 그는 그런 영화를 노래하고 싶지 않다. 시가 죽어가는 사회에서 시를 쓰려고 온몸으로 보고자하는 미자, '시'의 주인공인 그녀는 이창동이다. 







가수 박기영씨가 영화 '시(2010)'를 보고 만든 노래